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미니즘 리부트 (문단 편집) == 서평 == 우선, 본서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서평이 존재한다. 손희정과 동문이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조혜영(2017)에 따르면,[* 조혜영 (2017). 대중문화를 사건화하는 페미니즘 서적. 아시아여성연구, 56(2), 305-313.] 본서의 가치는 '''동시대성'''에 있으며, 현실과 접촉하는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 비평을 제시했다고 호평한다. 그는 본서가 대중 사회와 거리를 두고 어디까지나 비평가로서 시대 전체를 조망하고자 노력했다고 언급한다. 또한, '페미니즘 리부트' 라는 조어 역시, 페미니즘의 급부상에 섞여 있는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포함하긴 하지만, 대중문화 영역에서 불편함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새로운 양상의 페미니즘을 잘 대변한다고 적극적인 찬사를 보낸다. 다음으로, 본서에서 제시했던 "집단감응" 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평을 살펴볼 수 있다. 홍혜은(2018)은 스스로를 [[메갈리아]]와 [[트위터]]를 계기로 페미니스트가 된 저술가라고 소개하는데, 그에 따르면[* 홍혜은 (2018). 페미니즘적 상상력과 용기를. 여/성이론, 38, 256-266.] 페미니즘이 리부트되었다는 판단에도 이견이 없고, 집단감응이라는 개념에도 흥미로우나, '''집단감응만이 오늘날의 페미니즘의 동력원이 되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우선 집단감응을 통해 연결되는 페미니즘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 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이 서평 자체가 저자의 글쓰기 습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비판을 제기할 때 극단적으로 조심스러운 표현들을 골라 사용하고 있다.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어쩌면 이 부분은 [[트랜스여성]] 등의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련된 논쟁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페미니즘적 상상력과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홍혜은(2018)은 "여성이 공포를 느낀다, 여성이 고통 받고 있다" 는 식의 수사를 통해서 집단감응을 일으켜 페미니즘 운동의 동력을 얻어내는 것이 자칫 유해할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대중을 [[공포]]로 몰아붙여서 정치적 힘을 결집하고 여성들을 의식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은 (다소 다른 맥락이기는 하나) 이미 [[박가분]] 역시 《포비아 페미니즘》 에서 경고했던 바 있다. 논리의 대비를 위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동원하는 "안전한 공간을 원한다" 라는 수사는 "누구로부터?" 라는 질문을 요청하고, 그 결과 또 다시 [[피아식별]]을 하는 편가르기가 나타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 홍혜은(2018)은 그보다는 페미니즘적 이상향을 꿈꾸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작금의 집단감응은 [[공포]] 정동을 핵심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본서 5장에서 손희정이 따랐던 [[반지성주의]]의 [[정의]]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어 있다. 천정환(2017)의 문헌에 따르면[* 천정환 (2017). 촛불항쟁 이후의 시민정치와 공론장의 변화. 역사비평, 120, 386-406.] 촛불시위 이후의 공론장과 대중지성을 언급할 때 많은 지식인들이 자꾸 '''[[반지성주의]]라는 표현을 "남용" 하여 개념적인 "인플레" 가 나타나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하였으며, 그 결과 또 다른 "정치적 무능" 이 야기될 것이라고 비판한다(p.400). 특히, 본서는 반지성주의에 소위 '[[386]] [[아재]] 정치' 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그 결과 반지성주의의 개념화가 매우 느슨해지며 논리적으로도 [[정동]]과 지성이 구분되기 어렵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천정환(2017)은 국내 반지성주의의 중핵이 [[친문]] 세력이라는 저자의 판단에 대해서도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고 회의한다(p.401). 이와 관련하여 그의 문헌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 "[[안티페미니즘|반여성주의]], [[진영논리]], 팬덤정치 같은 '정치의 한계' 를 뭉뚱그려 반지성주의라 단정하는 흐름이 커졌다. 그러나 이는 대개 '''대중정치에 대한 손쉬운 일반화'''에 가까워 보인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경계가 지식인이라 불리는 부류의 자기합리화나 오히려 '반지성' 으로 귀착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중략)'' ...특히 '나는 너희들이랑 다른 지성이야' 같은 암묵적 [[엘리트주의|엘리티즘]]이 거기 끼어 있지 않은지 지성으로써 살펴야 한다." > ----- > 천정환(2017), p.402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천정환(2017)의 논의에 따르면, 반지성주의의 개념화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합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반지성주의를 반지식인주의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다른 일부는 반합리주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컨대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Hofstadter)는 반지성주의를 후자로 이해했으며, 국내에서도 [[일베저장소]]의 성향을 분석하면서 최철웅(2016)은[* 최철웅 (2016). 반지성주의와 타자 혐오. 경희대학교대학원보, 217. Available at [[http://www.khugnews.co.kr/wp/?p=5590]].] 일베가 반지식인주의에 가깝다고 정리한다. 한편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연구자도 있다. 일본의 문화연구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는, 반지성주의가 무지 상태가 아니라 "외골수의 지적 열정" 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경우, 세상에 [[확증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거의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지성주의의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대신에 천정환(2017)은 대중의 반지성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지식인들의 반지성주의가 더 큰 문제'''가 되며, 특히 [[인문학]]의 가치를 폄하하는 일부 이공계 고학력자들의 행보가 사회적으로는 더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문서 상단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문화/과학》 제21회 북클럽에서, 토론자 박차민정은 본서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혐오가 갑작스럽게 문제적 정동이 된 것이 아니라 기존 87년 체제 속의 시민권 내에 혼입되어 있었던 혐오의 정동이 '''현대에 들어서 비로소 이름붙여진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국내 여성계가 시민권 획득에 골몰했다는 1장의 서술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 다른 토론자 정원옥 역시 '''현대사회의 문제를 전부 87년 체제의 실패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명박 정부]]가 혐오를 일정 부분 '조장'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편의 정치' 는 사실 '차이의 정치' 로 해석되어야 하는 반면 사회적 강자들의 '편의 정치' 는 '배제의 정치' 로 달리 해석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즉, 두 토론자 모두 87년 체제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 손희정은 영화 전공자로서 국내 영화학의 역사에서는 87년 체제가 갖는 의미가 굉장히 크고, 이때 영화계의 권력을 잡은 386세대가 많은 산업적 파행을 일으켰다는 데서 문제의식이 출발하였다고 답변하였으며, 시민권에 대해서는 실제로 1장에서 언급한 시민권에 대한 생각은 이후 2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많이 바뀌어서, 5장에서는 박차민정과 동일한 방향으로 입장이 선회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혐오가 혐오로 이름붙여지는 과정에 대한 반론에도 동의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째서 혐오에 대한 담론이 갑자기 폭증하게 되었는가의 질문이라고 답변했다. 이후 플로어 질문자인 이동연은 본서에서의 [[386]]세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역사적 시대로서의 '역사성을 갖는 80년대' 를 혐오의 시대로 규정해서인지, 아니면 8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했던 [[남성]] [[운동권]] 세력이 혐오 정동을 갖고 있었음을 지적하려는 것인지 그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손희정은 본서에서 80년대 자체를 평가할 의도는 없으며, 단지 그 시절에 자신의 모든 걸 바쳐서 민주화라는 성취를 이룩한 다음 90년대 사회에 제대로 익숙해지지 못하고 고착되어 버린 386세대 남성들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